[문화매일] 서산시에 위치한 사적 제116호 ‘서산 해미읍성’이 조선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해미읍성은 1417년(태종 17년)부터 1421년(세종 3년)에 걸쳐 축성된 조선의 대표적인 평지 읍성이다. 전북 고창읍성, 전남 낙안읍성과 함께 조선 시대 3대 읍성으로 꼽히며, 그중에서도 가장 보존 상태가 양호한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해미(海美)’라는 지명은 1407년(태종 7년) 당시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을 병합하며 각 현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온 데서 유래했다.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아름다운 바다와 인접한 이곳은 고려 말부터 빈번했던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로서 건립됐다.
특히 이곳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1579년 군관으로 부임해 약 10개월간 근무하며 국방의 의지를 다졌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성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충청도 각 고을의 이름이 새겨진 ‘각자석’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성벽이 무너질 경우 해당 고을이 책임을 지고 보수하게 한 ‘책임 축성제’의 유물로 조선 시대의 철저한 관리 시스템을 보여준다.
하지만 해미읍성에는 아픈 역사의 단면도 공존한다.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당시 충청도 각지에서 압송된 신자 1,000여 명이 처형당한 순교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성내에 자리한 수령 300년의 ‘회화나무(호야나무)’는 당시 신자들을 매달아 고문했던 흔적을 간직하고 있어 방문객들의 숙연함을 자아낸다. 이러한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2014년에는 교황 프란치스코가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해미읍성은 성내 민가를 철거하고 드넓은 잔디밭과 산책로를 조성하여 시민들의 휴식처로 탈바꿈했다. 성벽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치성(雉城)’과 정문인 ‘진남문’의 홍예교는 조선 건축의 미학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해미읍성 인근에는 인기 드라마 촬영지와 지역 맛집들이 위치해 있어 역사를 배우고 휴식을 즐기려는 가족 단위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오병민 사진작가는 “해미읍성은 군사 요충지로서의 강인함과 순교 성지로서의 경건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이라며 “앞으로도 이 소중한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그 속에 담긴 사연들을 널리 알려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거듭나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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