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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속 '만 5세 조기 취학', 교육적 관점 수요자 중심 우선 돼야

박근종 작가 | 기사입력 2022/08/02 [14:53]

졸속 '만 5세 조기 취학', 교육적 관점 수요자 중심 우선 돼야

박근종 작가 | 입력 : 2022/08/02 [14:53]

 

박근종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전, 소방준감, 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종로·송파·관악·성북소방서장)밑도 끝도 없이 그야말로 느닷없이 정부가 2025년부터 취학연령을 1년 앞당겨 만 5세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제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7월 29일 초등학교 취학연령을 현행 만 6세에서 만 5세로 낮추는 학제 개편안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초·중·고 12년 학제를 유지하되 취학연령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하게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단 한 번도 대선 공약으로 제시된 적도, 국정과제로 논의된 바도 없는 사안을 뜬금없이 꺼내 든 것에 대해 국민은 당혹스럽기 그지없고 참으로 어이없다는 반응이 거세지며 후폭풍이 만만찮다.

박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추진 배경으로 “출발선상 교육 격차를 조기에 국가가 책임지고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교사와 교실 확충이 어렵고 입시·취업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만 5세를 매년 일정 비율(25%)로 나눠 단계적으로 취학시킬 계획이라고 했지만, 교육 전문분야 경력이 많지 않은데다 원 구성 지연에 따른 국회 공백 속에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않고 임명된 신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발표했기에 더욱 졸속이란 생각이 앞선다. 국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의 중차대한 문제를 여론 수렴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탓에 충분한 준비 끝에 내놨다고 믿기 힘든 이유다. 게다가 유치원과 초·중·고교 교육을 담당한 시·도 교육감과 사전 협의마저도 없었다고 한다. 학제 개편은 언제, 무엇을 가르치냐 하는 교육과정 개편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인데 이는 아예 언급조차 없었다.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영·유아 교육의 국가 책임을 확대하고 출발선상의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 취학연령을 낮추는 이점이 있어 고무적인 부분도 없지 않다. 저출산·고령화 추세를 감안하고 영유아의 신체 발달과 인지능력 발달이 빨라진 점, 선거권 연령대가 하향된 점을 고려할 때 중·고교와 대학 입학·졸업까지 연쇄적으로 1년씩 빨라지면서 청년들의 노동시장 진출 등 입직(入直) 시점을 1년씩 앞당기겠다는 목표도 있어 보인다. 특히, 군(軍) 복무로 인해 사회 진출이 늦어지는 남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취학 전 사교육 부담을 공교육으로 조기에 흡수해 정부의 보육 재정 지출과 가정의 양육 부담도 줄일 수 있다. 가정 형편, 지역 여건에 따라 유아 교육의 질적 격차가 작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공평한 교육 기회 구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수요자 중심의 교육적 관점이 아닌 공급자 중심의 사회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의문이 짙다.

 

 하지만, 반대 논리는 더욱더 거세다. 우선 공급자 중심의 사회적 관점에서도 청년들의 노동시장 진출 등 입직(入直) 시점을 1년씩 앞당긴다지만 워킹맘의 경력단절도 1년 앞당길 가능성이 크다. 종일 돌봄을 해주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은 많지만, 초등 1학년은 점심만 먹으면 집에 오기 때문이다. 돌봄 교실은 인원이 제한적이고, 학교에서 운영을 책임지지 않아 교육의 질도 기대하기 어렵다. 수요자 중심의 교육적 관점에서는 관련 단체와 교육 전문가들은 비판적인 시각이 훨씬 우세하다. 유아기 아동의 발달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비판이다. 교육계 지적은 만 5세 어린이들은 집중력이 약해 집단 놀이 형태가 아닌 정규 학교 교육 대상으론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2025년부터 4년간 단계적으로 3개월씩 취학연령을 낮춘다면 해당 학년 동급생 수 증가 폭을 25% 이내로 제한할 수 있어 교사·교실 조건은 넉넉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동급생 수가 25% 증가하면 해당 연령대의 대학, 취직 경쟁은 그만큼 더 치열해진다. 취학연령 1년 낮추면 2025년 초등 입학생은 8만여 명 더 늘어나 다른 연령대에 비해 치열한 입시·취업 경쟁에 몰리게 된다. 통계청의 출생아 수 통계를 보면 학제 개편 대상인 2018∼2021년 출생아 수는 한 해에 26만∼33만 명 안팎이다. 올해 출생아 수는 25만 명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교육부의 학제 개편안대로라면 일부 학생들은 한 학년이 40만 명 안팎인 상황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 시기의 출생아가 모두 초등학교에 들어간다면 2024학년도 취학 대상인 2017년생은 35만7,771명인데 반하여 2025학년도 취학 대상인 2018년생 32만6,822명과 2019년 1∼3월생 8만3,030명을 합친 40만9,852명으로 무려 5만2,000명가량 더 많아진다. 이런 식으로 추산하면 2026학년도 취학 대상은 36만1,504명, 2027학년도 취학 대상은 33만3,355명이 된다. 올해도 분기마다 지난해와 같은 비율로 아이들이 태어난다고 가정하면 2028학년도 취학 대상은 31만714명이다. 이에 비해 학제 개편이 끝나는 2029학년도에는 역으로 초등학교 취학 대상이 30만 명 밑으로 떨어지면서 가파른 ‘학령인구 절벽’이 도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과도기에 해당하는 세대들이 평생 현 정부를 원망할 개연성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학부모들이 제도 변경을 흔쾌히 수용할지 의문이 아닐 수 없는 대목이다.

 

더구나 국제적 추세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2021년 9월 16일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 2021’에 따르면 38개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를 포함해 68.4%인 26개국이 초등학교 취학연령이 만 6세이고, 핀란드·에스토니아 등 8개국은 7세, 호주·아일랜드 등 3개국은 5세, 영국은 4∼5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만 5세 이하 입학은 4개국으로 10.5%에 불과한 셈이다. 의무교육이 시작되는 연령도 대부분의 나라가 만 6세란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물론, 프랑스나 이스라엘, 헝가리, 멕시코(이상 3세)처럼 유치원부터 의무교육으로 지정하는 나라도 있다. 한국의 초등학교 취학연령이나 의무교육 시작 연령이 다른 국가들에 견줘 특별히 늦은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현재도 만 5세 입학이 허용되고 있지만, 호응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강조한다. 1998년 3월 1일부터 「초·중등교육법」이 시행되면서 제13조 제2항에서 “초등학교의 장은 (제1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초등학교의 학생수용능력에 여유가 있는 경우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만 5세 아동의 취학을 허용할 수 있다.”라는 내용을 신설함으로써 만 5세 유아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허용했다. 그러나 2007학년도 조기 취학 아동 수는 2,000명 대인 반면, 만 6세 취학을 미룬 취학 유예 아동은 4만여 명으로 18배에 달했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빠른 1~2월생 조기 취학제도가 사라진 2009학년도에 일시적으로 조기 취학 아동 수가 9,707명으로 치솟았으나, 2011학년도부터 급감했으며, 2019학년도 651명, 2020학년도 521명으로 뚝 떨어졌고, 2021학년도 초등학교 조기 취학 아동은 537명으로 전체 초등학교 취학 아동 42만8,405명의 0.1%에 불과했다. 취학 유예 아동 수는 2010학년도 이후 줄어 2019학년도 660명, 2020학년도 812명, 2021학년도 757명으로 오히려 더 많다. 이젠 적기 입학이 대세라는 결론이다.

 

1949년부터 이어 내려온 만 6세 취학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그동안 꾸준히 나왔다. 만 5세 때 이미 글을 읽고 간단한 연산을 할 만큼 아동의 발달 속도는 빨라졌다. 유치원 때부터 학원 다니는 아이가 늘면서 취학 전 교육 격차가 벌어진 것도 공교육 취학연령 조정 필요성에 힘을 싣는다. 그러나 취학연령 하향에는 현실적 문제가 뒤따른다. 어릴수록 몇 개월 사이의 발달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대·소변을 가리는 일부터 단체생활 적응력에서도 많은 기복과 편차가 있다. 형과 동생이 동급생이 되어 서로 어울리기에도 문제점이 노정될 우려가 크다. 무엇보다도 만 6세와 만 5세의 학력 격차가 우려되는 데다 공교육의 돌봄 기능도 여전히 부족하다. 학부모들도 학제 전환 피해가 집중되는 이른바 ‘박순애 세대’가 양산된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학교 운영과 교원 수급 문제가 걸린 교사들, 교육 대상이 절반 가까이 감소하는 사립 유치원들도 비판에 전격 가세하고 나섰다.

 

무엇보다도 교육 정책은 “신속히 강구하라”는 대통령 한마디에 결정될 가벼운 사안이 결단코 아니다. 미래의 희망이자 내일의 주역인 아이들을 잠재적 노동력으로 보는 산업적 관점으로만 접근해서도,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휘둘려서도 절대로 안 된다. 미래의 꿈나무인 아이들의 인생과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의 무게에 상응한 논리를 개발하고 합당한 사회적 합의를 최우선으로 끌어내는 게 첩경이다. 직접적 피해당사자인 유아 교육계는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실행을 맡긴다는 국가교육위원회는 애당초 구성조차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교육 현장과 학부모들 의견 수렴이 전혀 없었다. 아무리 필요한 정책이라도 고민도 준비도 이해도 공감도 설득도 없는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라면 지지를 얻기 어렵다. 취학연령을 낮추면 유치원생이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노무현·이명박 정부도 ‘만 5세 입학’을 추진했지만 1만 곳 가까운 유치원 운영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성사시키지 못했다. 제도 변경을 시도할 때 피해 당사자집단을 설득할 치밀한 대책들을 준비해가면서 추진하지 않으면 관철하기 어렵다. 특히 지금처럼 여소야대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공교육에 들어오기만 하면 모든 학생이 평등한 교육으로 격차가 해소될 것이란 안이한 기대가 빚은 패착이 분명하다. 오히려 조기교육 양극화만 키울 것이 불을 보듯 뻔해 보인다. 이렇듯 정부는 응집력 있는 반대 집단이 뚜렷한 이 사안에 대해 소통과 설득 등 사전 공감대 확산을 위한 준비를 충분히 했다는 노력이나 고민 등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회적 논의 절차와 사전 설득 과정 없이 발표부터 해놓고 이제부터 태스크 포스(TF)를 꾸려 추진하겠다고 한다. 혼란만 초래해 정부 신뢰를 또 한 번 떨어뜨리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부터 앞선다. 반발이 확산되자 급기야 교육부는 앞으로 출범할 국가교육위원회와 함께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치고 대국민 토론회와 공청회, 전문가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겠다고 밝혔다. 이런 절차들이 기존 방침을 밀어붙이기 위한 요식행위가 되어선 절대로 안 된다. 충분한 검토와 논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을 도출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시켜 모두가 반기고 환영하도록 교육적 관점 수요자 중심에서 신중히 결정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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