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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집과 소신의 차이

덕암 김균식 | 기사입력 2021/05/17 [08:49]

[칼럼] 아집과 소신의 차이

덕암 김균식 | 입력 : 2021/05/17 [08:49]

 

인간관계에서 피해야 할 몇 가지 요소가 있는데 자신만이 옳다고 여기는 독선, 남의 눈치나 견해를 듣지 않고 죽어라 우기는 아집,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보는 편견, 그리고 뜻대로 안되면 표정관리를 못하고 티를 내는 분노, 옳고 그름보다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가져오는 폐단은 결국 부메랑처럼 자신을 향하는 인과응보의 진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설상가상 이전의 것은 죄다 부정하여 역적으로 단죄하고 자신만이 최고의 선정을 베푼 것으로 자위한다면 진정 문제는 그러한 당사자가 아니라 간신 나라 충신만 있을 뿐 충신 나라 충신이 없음을 반증하는 셈이다.

무릇 사람이란 아니라 해도 누구나 화장실 갈 때와 올 때가 다르다. 달라야 맞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일반 백성들의 이야기고 일국의 정승판서나 임금이라면 경우는 다르다.

어떤 경우든 초심을 잃지 않아야 백성들의 신뢰를 얻을 것이며 용상에 앉을 때는 백성을 위하여 무슨 짓이라도 할 것처럼 감격하다가 막상 앉고 나니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과거 처럼 자손 대대로 왕위를 계승해 줄 수도 없고 기껏해야 국회의원 4년, 대통령이라도 5년 남짓한 기간 동안 국정을 알면 얼마나 알고 국가 경영이라는 엄청난 공무에 날 때부터 신이 아닌 이상 꿈에 그리던 태평성대와 국태민안을 이루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그 다음 방법이 인재의 등용이다. 풍부한 경력자와 덕망이 있는 자를 뽑아 함께 국가의 흥망성쇠를 논의하고 부국강병의 길을 위한 심도 깊은 정책을 펼치는 게 임금의 권한이자 국민을 위한 의무다.

물론 뜻에 맞는 사람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뜻은 개인의 정이요, 전문성이 뛰어난 능력에 맞는 사람을 기용해야 사사로운 정을 떠나 해당분야를 통제할 수도 있고 조직 장악은 물론 발전을 기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국의 살림을 운영하는 정부는 개인의 친분을 나누는 친목단체가 아니라 오직 국민만을 위하는 정승판서를 기용하여 다음 임금의 미래까지 염려해주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인사권이 활용되어야 한다.

어찌 한 나라의 분야별 수장을 경험도 부족하고 말도 탈도 많은 인물을 내정하여 번번이 야당의 반발을 사고 심지어 무작정 편들던 여당마저도 어정쩡 엉거주춤한 모습을 보일까.

상황이 이러다 보니 얼핏 보면 야당이 대통령 인사권에 사사건건 트집 잡는 모습으로 비취고 보란 듯이 강행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소신을 강행하는 의지력의 지도자로 비춰진다.

과연 그럴까. 청와대의 입장대로 그렇다 치자. 누가 심판할까. 소신일지 독선과 아집일지는 누구도 모른다.

후보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자질과 업무적 능력에 대해 속으로 심판하고 훗날 표로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얼마 전 보궐선거에서 이미 적색 경고등이 켜졌음에도 중단 없는 전진은 계속되고 있다. 이래서 ‘권불십년’이란 말이 나온 것인가. 반대로 경청이라는 과정을 거친 소신은 참으로 훌륭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것이 고기잡이 선장이라면 만선의 기쁨을, 농부라면 풍작을 가져올 것이며 장사치라면 큰 돈을 벌 수 있다. 세 사람이 길을 걸어도 한 사람의 스승이 있다 했다.

독선 대신 야당이나 국민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경청, 아집 대신 폭넓게 민의를 수렴하는 배려, 편견 대신 상대방의 의견도 인정할 수 있는 아량, 때로는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분노 대신 용서를 할 수 있는 덕의 정치야 말로 군주가 행해야할 길인 것이다.

누가 누굴 탓하랴.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근절되지 못할 폐단인 것을, 그 이유는 바로 국민들의 표심에 달려있기 때문이며 온 국민이 깨어나 옥석을 구분할 줄 안다면 한 번의 선거만으로 나라가 바뀔 수 있으며 우리 후손들까지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음을 공언한다.

석유 한 방울 안 나오는 나라가 가진 게 뛰어난 민족혼과 위·아래가 반듯한 질서 아니겠는가.

어쩌다 애·어른이 없는 나라,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권을 외쳐도 진실이 시도 때도 없이 묻혀 버리는 세상이 되었을까.

승용차 몰고 휴대전화 들고 다녀도 500년 전 조선시대와 비교해 볼 때 그리 행복하지 않은 세상이다. 남자들의 무능력으로 해마다 몽골에 수십만 명씩 조선 여자들을 공녀로 보내고도 모자라 일제식민지에서도 수십만의 어린 여성들을 전쟁터 성 노리개 감으로 보낸 과거가 불과 얼마 전이다.

그 때는 이미 정해진 임금이라 치자. 지금은 국민들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여전히 판을 짜고 둥둥거리는 언론의 북소리와 온갖 인맥에 질질 끌려 자신과 가정과 이웃과 나라의 미래를 말아 처먹는 어리석은 국민수준을 못 벗어나는 것이다.

누가 누굴 탓하랴. 선조들이 목숨 바쳐 지킨 나라의 국경일에 태극기조차 걸지 않는 국민이 있기에 위정자들의 신명나는 세금 나눠먹기가 가능한 것이다.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개각을 단행했다.

김부겸 국무총리와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임명안을 모두 재가했다. 물론 야당의 반발이 있었지만 이제 반대에 대한 감각은 사라진지 오래다.

야당의 동의 없이 장관이 임명된 것은 이번이 32명 째다.

이쯤되면 국회의 청문회제도는 국민의 눈치를 보지 않는 정치쇼에 불과한 것이며 무능한 야당도 제대로 털든가 아니면 아예 개최 장소에 나오지 말았어야 어용이란 소리를 안 듣는 것이다.

같은 날 한국여성단체협의회 60개 회원단체 전국 500만 회원 일동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임혜숙 후보의 장관임명을 규탄한다며 적극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런들 무슨 의미가 있으랴. 이미 선장은 항구를 떠났다. ‘상탁수 하부정’이라 했던가 윗물이 이러니 아랫물은 얼마나 대놓고 원 없이 4년 짜리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을 남용하고 있는지 돈을 쓰고, 인사권을 남용한 흔적만이 말할 것이다.

강 위에 배가 지나면 흔적이 없을 것 같지만 강이 알고 배가 알고 사공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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